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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 젖은 무궁화로 목근통신(木槿通信)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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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무궁화(無窮花, 木槿, 槿花, Rose of Sharon)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 김소운(金素雲) 선생을 생각한다. 김소운 선생은 시인이면서 수필가로 활동했던 분으로 일어에 능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엔 일어에 능한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일어에 능한 사람을 꼽을 때 그분이 항상 들어간다. 일정시대에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문하에서 시를 공부했고, 그곳 시단에서 시작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의 민요와 시를 일역하여 일본에 소개하는 번역문학가로 활동하면서 뛰어난 글재주로 수많은 수필을 썼다. 일한사전을 저술한 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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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金素雲) 선생

 

한국의 수필가 두 명을 꼽으라면 피천득 선생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김소운 선생이다. 감성 가득한 피천득 선생의 글처럼 김소운 선생의 글도 매우 감성적이었으며, 그런 작품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가난한 날의 행복"이 있다. 하지만 김 선생은 이런 미셀러니(경수필, 輕隨筆)류의 글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다.

 

김소운 선생은 디테일을 갖추었으나 과감한 생략이 있는 메타포를 동원한 논리적 에세이(중수필, 重隨筆)에도 능했다. 그게 당연할 수 있는 건 그가 시인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천득 선생이 신변, 사색, 서간, 기행 등에 적합한 수필에 능하고, 사상가이자 수필가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에 비교될 수 있다면, 김소운 선생은 그와 함께 주관적, 개인적, 사색적인 경향을 띤 글에 능한 철학자이자 문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 비할 수 있겠다. 이분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획기적인 작품이 바로 "목근통신(木槿通信, 1952)"인데, 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한 서간수필(書簡隨筆)이다. 대개 서간의 형태는 경수필에 속하나, 이 작품은 중수필의 경향을 보이며 전개되는 교묘한 일련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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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근통신은 1951년에 "설국(雪國, ゆきぐ)"을 저술한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개로 일역이 되어 일본의 시사잡지인 중앙공론(中央公論)에 실린 글 모음이다. 이 잡지는 당시 일본의 지성들이 구독하는 고급지였기에 그들에게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것과 일본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상을 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일본을 문학적인 고향으로 가진 김소운 선생은 생전에 친일 저작물 3편을 쓴 일이 있음(친일인명사전 친일문학가 선정 기준 해당)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표현된 고국에 대한 사랑은 물론, 평생 일본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노력한 점 등이 고려되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건 매우 다행한 일이다. 아마도 그가 목근통신을 통해 일본에 전한 메시지가 반일적(反日的)이고도 애한적(愛韓的)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분의 여러 글에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유 없는 멸시에 대해서 강력한 항의나 분노가 표시되었기에...

 

비 오는 날, 비에 젖은 근화(槿花), 무궁화를 보며 내 수필의 아버지 중 한 분인 김소운 선생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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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김소운(金素雲)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34

『김소운수필전집』 전5권(1978)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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