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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9:41

배신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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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들의 삶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 배신(背信)이다. 고려말 우왕 시기에 요동을 정벌하러 떠난 이성계가 위화도에 이르러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섰다(回軍). 돌아와 우왕을 폐하고 조선을 개국했으니 이것은 대표적인 배신 중 하나이다. 이건 아무리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로 변명을 해도 배신이다. 

 

철원 풍천원에 후고구려(태봉국)를 세운 궁예 역시 오른팔과 같았던 장수 왕건과 대치하면서 포천, 철원 접경의 한 산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여 패했고, 그의 운을 다했다. 그가 원통해 운 산이라하여 그 산은 울음산(명성산, 鳴聲山)이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산정호수에서 바라다보이는 산)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니 궁예에 관해 좋은 얘기는 다 사라졌겠는데, 어쨌던 궁예를 저버린 왕건의 태도는 배신이다. 

 

이렇듯 나라를 세울 만큼의 역사적인 배신은 아닐 지라도 사람들은 의도치 않은 배신을 하며 살기 마련이다. 그게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거둔 일이건, 좋아하던 것이나 일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이건... 그리고 그 배신으로 좋은 결과가 생겼든, 나쁜 결과가 생겼든 그 개인은 여생에서 그로 인한 아쉬움과 후회를 가지기 마련이다.

 

바로 그 단어 “배신”을 내게 적용할 때 항상 떠오르는 것이 등산이다. 어릴 적(60년대 초반)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아이스 스케이팅과 야구에 미쳐 살았는데, 그 관심이 점차 아웃도어와 등산, 그리고 스키로 넘어갔다.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면서 참여하는 캠프에서의 야영활동은 색다른 즐거움이었고, 그런 아웃도어 활동 중에 알게 된 등산(실은 록 클라이밍)은 나를 깊이 매료시켰다.

 

당시에 발견한 책이 “등산백과”인데 이걸 저술한 분이 당시 한국산악회의 부회장이자 대한스키협회의 이사로 계신 손경석 선생이었다. 그 책은 내가 등산에 뛰어들기 6년전에 이미 발간되어 있었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내가 스카웃의 종합지침서인 대장교범을 달달 외워 훌륭한 보이스카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난 훌륭한 산악인이 되고자 했다.

 

등산도 잘 하려면 그에 관한 모든 걸 담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등산백과”(나중에 “등산기술백과”로 제목 변경)를 달달 외워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고교 시절에 본 참고서는 단 하나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읽은 바가 없는데, 이 등산백과는 밑줄까지 쳐가면서 알파에서 오메가를 탐구했다. 실기에 앞서 이론부터 무장한 것인데, 이런 습관은 나중에 아날로그의 최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하나의 천성처럼 굳어버리게 되었다. 이 때의 습관이 나중에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장비 리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이론부터 다진 것이 등산이다. 역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조의 문인 유한준의 말처럼 난 손경석 선생이 정리한 등산에 대한 모든 것을 훤히 꿰게 되었다. 내게 등산의 모든 것은 등산백과의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요, 과정일 뿐이었다. 알고 하는 것이니 어려울 리 없었다. 이론에 의한 접근 만큼 안전한 것이 있을 리 없고, 그걸 종합하면서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건 작은 혁명 같은 발상이라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등산에 깊이 빠졌다. 어린 청소년의 작은 뇌는 모조리 등산으로 꽉 차 있었다. 생각은 몸을 지배하고, 생각이 생활 전체를 아우른다. 내가 등산이 되고, 등산이 내가 되었다. 그것과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등산백과는 등산인의 성경과 같은 책이었으며 기본상식의 집합체였고, 등산의 시사적인 지식은 등산을 시작한 후에 발행되기 시작한 “등산” 지(나중에 “산”으로 개편)를 통해 얻었다.

 

예나 지금이나 등산과 관련해서는 “산이 거기에 있어서(Because it's there)”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멋진 산악인의 명언이다. 영국의 등산가 '조지 허버트 리 말로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의 말이다.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된 그의 주검은 1999년에 발견되었다. 그는 산이 거기 있기에 갔고, 그가 사랑하던 산의 일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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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이 조지 말로리 - “왜냐하면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간 바로 그 사람. 조지 말로리(우)와 샌디 어빈(좌). 사진 영국왕립지리학회. 말로리의 시신은 1999년에 발견되었으나 함께 오른 어빈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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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한 히말라야의 일부가 된 조지 말로리

 

이런 스토리는 등산에 매료된 한 청소년에게는 로망을 심어줬다. 강한 생명은 죽음에 대한 신비로운 동경을 지니기도 하는데, 이 등산을 사랑하게된 청소년에게는 그런 죽음이 매우 낭만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죽으리라!’는 다짐을 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험한 암벽을 오르다 그 클라이밍 코스 한 켠에서 조그만 동판을 발견하는 일이 있었다. 거길 오르다 죽은 이의 유해를 담았거나 그를 기리는 동판이었다. 누군지 모를 그에게 깊은 존경심을 지니며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피치 못 할 숙명 같은 걸 느끼며 정진하던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바위를 오르는 걸 좋아하던 내게는 죽음이나 부상이 친구였다.

1999년에 도발적인 제호를 지닌 남성지 “스윙”이 창간되었다. 그 창간호 인터뷰의 대상이 나였다.( https://www.drspark.net/jia_warehouse/415169 ) 그런데 그 인터뷰 항목 중 이상하게도 “죽을 뻔한 경험”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 사는 나를 보며 추려낸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거기 이렇게 답했다.

 

”23. 죽을 뻔한 경험

 

고교 2년 시절에 난 전설적인 등산가인 프랑스 국립등산스키학교장 가스통 레뷔파를 추앙하는 록 클라이머(rock climber)였었다. 그 때 인수봉의 우정 A 코스를 오르다 슬립(slip)하여 8m 정도를 추락한 일이 있다. 난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었고, 보조 구명줄을 허리에 묶고 있었으며, 나의 앵커(anchor)를 맡은 친구가 워낙 철저히 역할을 해주는 바람에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 산악부 활동을 할 때까지 부모님의 눈을 피해서 했다.(나중에야 두 분이 아시고도 모른 척 하셨다는 걸 깨달았지만...)“

 

난 스키의 버티컬 포털인 내 개인 홈페이지 drspark.net을 통해서 스키를 타며 헬멧을 쓰자는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지금은 스키장에서 알아서 관광 스키어에게도 헬멧 쓰기를 강제할 정도로 바뀌었다.(그런 캠페인 이전에는 알파인 스키 선수들만 헬멧을 착용했다.) 알고 보면 록 클라이밍 사고에서 나를 구해준 것이 헬멧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카빙 스키의 출현으로 인해 익스트림 스포츠로 변모한 스키에서도 그게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등산과 일체화시킨 이 청소년의 당시의 꿈은 산에서 죽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지 말로리처럼 유명세를 타는 것이 첫 번째 관건이었다. 그래서 롤 모델을 찾았고, 자연스레 찾아진 산악인이 당시 최고난도의 암벽등반 기술을 구사했던 프랑스의 가스통 레뷔파였다. 그는 일찌기 프랑스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대의 최연소 대원이었고, 국립스키등산학교(ENSA)의 강사였고, 나중에 교장이 되기도 했다. 그의 책 “설과 암”을 열심히 읽었다. 난 그가 “암”의 왕자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스키에 능한 “설”의 왕자이기도 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훌륭한 산악인이 되기 위해 미리 스키도 배워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여건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스키에 어머님의 도움으로 뛰어들었다. 스키는 겨울 한 철의 계절 운동이니 당연히 등산을 겸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몇 년을 지내고, 대학산악부 생활 중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간 후에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다.

 

놀기 좋아하고, 운동이나 야외활동에만 빠져 살던 이 청소년은 군 제대 후에 비로소 자신의 적성이 “공부”임을 알게 되었다. 등산과 스키를 잊고 책만 파는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직장을 잡고, 안정이 되자 다시 빠져든 것은 스키였다. 그 몇 년 사이에 결혼을 했고 난 죽으면 안 되는 남편이 되어 있었고, 또 태어날 아기의 아빠였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도 “등산=죽음”의 공식이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등산을 버린(?) 나는 스키에 빠져들었다. 대개 적당히 빠지는 것과는 친하지 못 한 나는 깊이 빠져들었다. 다행히 이 때는 이미 30대가 되었고, 난 직업 스키어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스키는 산에서의 죽음을 꿈꾸던 젊은 날의 치기와는 다른 진정한 호사가로서의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가 되었다.

 

그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 하나의 원죄(原罪)의식으로 남아있는 “등산에 대한 배신”이다. 최근 등산 전문 웹진에 두 개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난 돌아와 고향을 기웃대는 이방인의 삶과 그 고향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죄의식을 표현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한 분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보게 되었다. 

 

그 역시 산악인을 꿈꾸고 산에 살던 사람인데 현재 스키가 업이 된 분이다. 그가 쓴 글은 함께 산을 타던 동료들이 산의 일부가 된 것에 대한 슬픔과 그들을 배신한 자로서의 원죄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걸 통해 난 당연히 감정이입(empathy)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와 다른 것은 자신의 배신 행위를 더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산에 갔다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은 게 배신”이라고 표현했다. 산악인에게는 산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영광이다. 지구인이 지구의 일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왠지 산의 일부가 되는 건 남의 일 같다. 우리도 산의 일부가 되지만 우린 동산의 일부가 되고, 산악인은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는 게 다를 뿐이다. 

 

우린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동산으로 가는데 그들은 산으로 가서 거대한 산의 티끌 같은 일부가 된다. 심지어는 실종되었다가 발견되어도 산의 일부로 그냥 남겨진다. 이 첨단과학기술의 21세기에도 그들을 우리의 땅으로 귀환시킬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기한 배신자의 이름은 조동영이다. 스키계에서 스키를 업으로 하고 있고, 훌륭한 튜너(tuner)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아직도 산을 좋아하고 취미로서의 등산을 즐기는 분이다. 그분의 포스트를 보며 그에 감정이입한 나는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박순백: 저도 산 타다가 스키로 넘어와서 다시 산으로 돌아가지 않은 배신자(?)로서 같은 느낌입니다. 산을 타던 당시에 ‘이렇게 미쳐가니 언젠가 난 암벽 틈새의 동판 속에 누워있겠구나.’란 생각을 했었죠. 두 대의 스포츠카를 사기 전에는 ‘이 차를 사면 길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도 했습니다.

 

인수봉에서 슬립해서 비레이(belay)를 한 상태로 8m 정도 추락했었는데 다행히 바위 틈새에 꽂은 하켄(haken, 피톤)이 안 빠져서 살았죠. 당시의 니커보커(Knickerbocker)에 신은 스타킹 한 쪽은 그 추락으로 해져 큰 구멍이 나고 살짝 쓸린 다리를 보며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했었죠.

 

빗속의 고속도에서 멍청하게 광폭 타이어의 스포츠카를 헤어핀 같은 코너에 빗물이 질펀한 걸 보면서도 속도를 안 줄이고 달리다 360도가 넘게 돌면서 도로 양편의 가드레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생각했던 도로 위에서의 객사? 근데 그럼 아내는 억울하잖아?’란 생각을 했죠. 다행히 차를 더 망가뜨려 사람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차 덕분에 저나 집사람은 아무 일도 없이 털고 일어났죠.

 

내가 생각했던 예정된 죽음(?)에서 벗어나 이 나이까지 살면서도 그 죽음에 대한 작은 공포는 늘 머릿속에 있습니다. 얼마전에 히말라야 고봉의 능선(ridge)를 걸어가는 한 사람이 그 릿지의 좁은 길 바로 오른편 아래에 죽은 채 얼어있는 시체 하나로 살짝 카메라를 돌렸다가 다시 전진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계속 산을 탔더라면 저게 내 모습일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말씀 대로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는 게 배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배신자들의 뇌리에 자리한 그 원죄의식은 우리의 살아생전에 지울 수 없을 겁니다."

 

* 주의: 바로 아래 기사에는 산이 된 한 사람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걸 보기 싫은 분은 링크를 클릭하지 마세요.

 

참조: Hannelore Schmatz, the first woman to die on Everest and the dead bodies on Mount Everest

https://mru.ink/hannelore-schmatz/

 

제가 위의 포스트를 하도록 한 조동영 선생의 포스트는 아래와 같은 것이다. 이분은 지산포레스트(스키)리조트 근처에서 ”나이프엣지지산“ 튜닝샵을 운영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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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영 선생과 스키도 좋아했던 “산이 된 동료, 고 김홍빈 선생.”(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다이나스타 사의 저 스키는 나도 스포츠파크의 스폰서링을 받아 탔던 스키이다. 그걸 탄 것이 오래지 않은데...ㅜ.ㅜ

“조동영(DOCJO-Knifeedge, JISAN): 돌아오면 살랑살랑 관광스키나 타고 뒷동산 올라 낮술이나 푸자던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고 덜렁 책 한 권 날아 온 것을 어찌 떠들러 보겠는가! 가게에 딩굴딩굴 굴러다닌 책인데 쇄골 부러져 누운 김에 꼼꼼히 보았다. 

서럽고 또 자랑스럽고 그립다.

젊어서는 산악 동료였고 내가 스키로 온 후로는 가족이었다.

그대들을 따라가지 않은 내가 배신자가 아니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대들이 배신자다.

나 혼자, 그대들이 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맘껏 누리다 갈테다. 지켜보시라!

병원밥 먹는데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옆에서 또 자꾸 쳐다 본다.

개 쪽팔려~~~

갱년기가 학실하네 시바~~~

#김홍빈 #김창호 #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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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 “산 넘어 산”이 아닌 “산 넘어 삶” by 고 김홍빈 - 영어로 표현하면 더 의미가 닿을 수도 있겠다. “A Life Beyond Mountains". 오른편 "8000미터에서 하늘이 된 삶" by 고 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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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를 타다 부상 당하여 동료의 등산 관련 책을 읽은 후 관련 포스트를 한 조동영 선생.

 

위 글에 대한 앞서의 내 댓글을 보고 조동영 선생이 아래의 대댓글을 달았다.

 

“조동영: --> 박순백

 

네. 공감합니다.

김홍빈 형은 동계체전 스키 우승하고 광주로 돌아가는 길에

'동영아. 너도 가자. 내 14개 마지막 봉인데 니가 있어야재.' 

베이스에서 식량이나 축내기 싫어서 극구 사양했더니,

'금방 갔다올게. 다음 동계체전용 스키나 사놔' 그러면서 스키값을 주고 갔습니다. 결국 그 스키는 경기도 팀에 기증돼서 또 다른 우승을 했지요.

창호는 해마다 아내랑 딸을 데리고 가게에 왔는데, 마지막 해에는 '이제 안 갈게. 형하고 스키나 타면서 술이나 퍼먹자' 그래놓구는 나한테 산에 간다 말도 않고 떠났습니다.

주검이 돌아오는 날, 상주복을 입고 성모병원에서 드라큐라 관을 열고 그를 보자니 눈물도 안 나오더군요.

저랑 (홍)윤기랑 창호는 스키튜닝 동업자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길, 가야할 길, 가기싫은 길이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의 어디 쯤에서 우리는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전 그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서러움과 외로움은 산자의 몫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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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일부가 된 그린 부츠(Green Boots). Indian ITBP climber, Tsewang Pal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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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Boots / 초록색 코프라(Koflach) 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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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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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로 실현하는 “산 넘어 삶”
 

* 첨부된 사진 중 조지 말로리를 발견한 사진은 “페이스북의 경고”를 받았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민감한 사진이므로 게시물을 숨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숨기거나 조건부로 가려지는 두 선택에서 후자를 택했다. 원하는 사람만 그 사진을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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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된 후 1999년에 발견된 조지 말로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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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George to Ruth Mallory from Camp I, Everest

 

Full Transcript

 

My dearest Ruth,

 

This is going to be the scrappiest letter - a time limit for the mail has suddenly been put on and this morning when I might have been writing to you I was busy doing a communique at Norton’s request, I find it an impossible task to write that sort of thing up here. Anyway such as it is you will have read it, so that is some satisfaction.

 

Dear Girl, this has been a bad time altogether. I look back on tremendous efforts & exhaustion & dismal looking out of a tent door and onto a world of snow & vanishing hopes - & yet, & yet, & yet there have been a good many things to set on the other side. The party has played up wonderfully. The first visit to the North Col was a triumph for the old gang. Norton & I did the job & the cutting of course was all my part - so far as one can enjoy climbing above Camp II I enjoyed the conquest of the ice wall & crack the crux of the route, & making the steps too in the steep final 200 ft.

 

Odell did very useful work leading the way on from the camp to the Col; I was practically bust to the world & couldn’t have lead that half hour though I still had enough mind to direct him. We made a very bad business of the descent. It suddenly occurred to me that we ought to see what the old way down was like. Norton & I were ahead, unroped, & Odell behind in charge of a porter who had carried up a light load. We got onto ground where a practiced man can just get a long without crampons (which we hadn’t with us), chipping occasional steps in very hard snow or ice. I was all right ahead but Norton had a nasty slip & then the porter, whose knot didn’t hold so that he went down some way & was badly shaken. Meanwhile I, below, finding the best way down had walked into an obvious crevasse; by some miscalculation I had thought I had prodded the snow with which it was choked & where I hoped we could walk instead of cutting steps at the side of it - all the result of mere exhaustion no doubt - but the snow gave way & in I went with the snow tumbling all around me, down luckily only about 10 feet before I fetched up half-blind & breathless to find myself most precariously supported only by my ice axe somehow caught across the crevasse & still held in my right hand - & below was a very unpleasant black hole. I had some nasty moments before I got comfortably wedged & began to yell for help up through the round hole I had come through where the blue sky showed – this because I was afraid any operations to extricate myself would bring down a lot more snow & perhaps precipitate me into the bargain. However I soon grew tired of shouting – they hadn’t seen me from above - & bringing the snow down a little at a time I made a hole out towards the side (the crevasse ran down a slope) after some climbing, & so extricated myself - but was then on the wrong side of the crevasse, so that eventually I had to cut across a nasty slope of very hard ice & further down some mixed unpleasant snow before I was out of the wood. The others were down by a better line 10 minutes before me - that cutting against time at the end after such a day just about brought me to my limit.

 

So much for that day.

 

My one personal trouble has been a cough. It started a day or two before leaving the B.C. [Base Camp] but I thought nothing of it. In the high camp it has been the devil. Even after the day’s exercise I have described I couldn’t sleep but was distressed with bursts of coughing fit to tear one’s guts - & so headache & misery altogether; besides which of course it has a very bad effect on one’s going on the mountain. Somervell also has a cough which started a little later than mine & he has not been at his physical best.

 

The following day when the first loads were got to Camp IV in a snowstorm Somervell & Irvine must have made a very fine effort hauling load up the chimney. Hazard had bad luck to be left alone in charge of the porters at [Camp] IV only for one night according to our intentions, but the snow next day prevented Geoff [Bruce] & Odell from starting - & the following day he (i.e. H) elected to bring the party down quite rightly considering the weather; but can you imagine, he pointedly ordered one man, who had been appointed camp cook for the men, to stay up on the chance of his being useful to the party coming up - it is difficult to make out how exactly it happened, but evidently he didn’t shepherd his party property at all & in the end 4 stayed up one of these badly frostbitten. Had the snow been a bit worse that day we went up to bring them down things might have been very bad indeed. Poor old Norton was very hard hit altogether - hating the thought of such a bad muddle, & himself really not fit to start out next day - nor were any of us for that matter & it looked 10 to 1 against our getting up with all that snow about let alone get a party down. I led from the camp to a point some little distance above the flat glacier - the snow wasn’t so very bad as there had been no time for it to get sticky, still that part with some small delays took us 3 hours; then S. [Somervell] took us up to where Geoff [Bruce] & Odell had dumped their loads the day before & shortly afterwards Norton took on the lead; luckily we found the snow better as we proceeded, N [Norton] alone had crampons & was able to take us up to the big crevasse without step cutting.

 

Here we had half an hour’s halt and at 1.30 I went on again for the steep 200 ft or so to the point where the big crevasse joins the corridor. From here there were two doubtful stretches. N [Norton] led up the first while the two of us made good at the corner of the crevasse - he found the snow quite good. And S. [Somervell] led across the final slope (following Hazard’s just discernible tracks in the wrong place, but of some use now because the snow had bound better there). N. [Norton] & I had an anxious time belaying, & it began to be cold too as the sun had left us. S. [Somervell] made a very good show getting the men off - but I won’t repeat my report. Time was pretty short as it was 4.30 when they began to come back using S’s [Somervell’s] rope as a handrail. Naturally the chimney took some time. It was just dusk when we got back to camp.

 

N [Norton] has been quite right to bring us down for rest. It is no good sending men up the mountain unfit. The physique of the whole party has gone down sadly. The only chance now is to get fit & go for a simpler quicker plan. The only plum fit man is Geoffrey Bruce. N. [Norton] has made me responsible for choosing the parties of attack himself first choosing me into the first party if I like. But I’m quite doubtful if I shall be fit enough. Irvine will probably be one & 2 of N [Norton], S [Somervell], or self with Geoff the other 2 to make up 4 for the two parties of two each. But again I wonder whether the monsoon will give us a chance. I don’t want to get caught but our three day scheme from the Chang La will give the monsoon a good chance. We shall be going up again the day after tomorrow - Six days to the top from this camp!

 

Mails have come tumbling in these last days – three in rapid succession - yours dated from Westbrook with much about the car. I fear it has given you a lot of trouble; Clare’s poem with which I’m greatly delighted; a good letter from David [Pye] from P.Y.P. [Pen-y-Pass, Wales] - will you please thank him at once as I shall hardly manage to do so by this mail. Mother writes in great spirits from Aix. It’s a great joy to hear from you especially but also from anyone who will write a good letter.

 

The candle is burning out & I must stop.

 

Darling I wish you the best I can - that your anxiety will be at an end before you get this - with the best news. Which will also be the quickest. It is 50 to 1 against us but we’ll have a whack yet & do ourselves proud.

 

Great love to you. Ever your loving, George.

 

[written on margin of first page]

P.S. The parts where I boast of my part are put in to please you and not meant for other eyes. G.M.

 

조지 말로리가 루스 말로리에게 보낸 편지, 에베레스트 1번 캠프에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루스에게,

 

이 편지는 아주 두서없을 거야. 갑자기 우편 발송에 시간 제한이 생겨서, 오늘 아침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을 때는 노튼의 요청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바빴어. 이곳에서 그런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 어쨌든 당신이 그 글을 읽었을 테니, 그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래.

 

사랑하는 당신, 이번 시간은 정말로 힘들었어. 엄청난 노력과 피로, 그리고 텐트 문 밖을 내다보며 보이는 것은 온통 눈으로 덮인 세계와 사라져가는 희망들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반대되는 좋은 일들도 꽤 많았어. 팀은 정말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어. 북릉 첫 방문은 우리 오래된 팀의 승리였어. 노튼과 내가 그 일을 해냈고, 물론 잘라내는 작업은 전적으로 내가 맡았어. 2번 캠프 위로 올라가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나는 얼음벽과 갈라진 틈을 정복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200피트의 가파른 구간에서 발판을 만드는 것을 즐겼어.

 

오델은 캠프에서 콜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며 매우 유용한 일을 했어. 나는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고 그 반시간 동안 선두를 맡을 수 없었지만, 여전히 오델을 지도할 만큼의 정신은 남아있었어. 하산하는 과정은 정말로 힘들었어. 갑자기 우리가 예전에 내려왔던 길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노튼과 나는 앞서 있었고, 로프 없이 내려왔어. 오델은 가벼운 짐을 든 짐꾼을 인솔하고 뒤따라오고 있었어. 우리는 경험 많은 사람이 아이젠 없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지형에 도착했어. 나는 앞서 있었고 괜찮았지만, 노튼은 심하게 미끄러졌고, 그 짐꾼은 매듭이 풀려서 꽤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심하게 놀랐어. 그동안 나는 아래에서 가장 좋은 하산로를 찾다가 뚜렷한 크레바스로 들어가 버렸어. 내가 잘못 계산해서, 눈으로 막힌 그곳을 찌르며 우리가 발판을 깎지 않고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눈이 무너져내리며 나는 그 안으로 빠져버렸어. 다행히도 약 10피트 정도만 떨어진 후, 반쯤 실명 상태로 숨을 헐떡이며 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얼음도끼가 크레바스에 걸려 간신히 지탱되었어. 아래에는 매우 불쾌한 검은 구멍이 있었어. 내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올라가기 전까지 몇 차례 불쾌한 순간을 겪었어. 더 이상 소리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눈을 조금씩 내리면서 옆으로 나갈 길을 만들었고, 몇 번의 등반 끝에 빠져나올 수 있었어. 하지만 그때 나는 크레바스의 반대편에 있었고, 결국 아주 단단한 얼음 위를 깎아서 다시 내려가야 했어. 나머지 사람들은 더 나은 경로로 10분 전에 내려왔어. 그 날의 끝에서 시간에 쫓기며 발판을 만드는 것이 내 한계를 거의 다하게 만들었어.

 

그날은 그 정도로 끝났어.

 

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기침이야. B.C. [베이스 캠프]를 떠나기 며칠 전에 시작되었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 높은 캠프에서는 정말 지옥이었어. 내가 설명한 그날의 운동 후에도 잠을 잘 수 없었고, 기침 발작이 너무 심해서 내장을 찢어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두통과 온갖 고통에 시달렸고, 당연히 산을 오르는 데에도 매우 나쁜 영향을 미쳤어. 소머벨도 나보다 조금 늦게 기침을 시작했는데, 그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어.

 

다음 날 첫 짐이 4번 캠프에 도착했을 때, 소머벨과 어바인은 굴뚝을 끌어올리며 매우 훌륭한 노력을 했어. 해저드는 짐꾼을 4번 캠프에서 한밤만 지키라는 우리의 의도에 따라 불운하게도 혼자 남아 있었는데, 다음날 눈 때문에 제프 [브루스]와 오델이 출발하지 못했어. 결국 그는 날씨를 고려해 내려오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그는 요리사로 임명된 한 사람에게 남아서 다음 올라오는 팀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명령했어.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어렵지만, 그는 짐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결국 4명이 남아 있었어. 그중 한 명은 심하게 동상에 걸렸어. 우리가 그들을 데리러 올라갔을 때, 눈이 조금만 더 나빴다면 상황은 매우 나빠졌을 거야. 가엾은 노튼은 그 모든 혼란 때문에 크게 낙담했고, 다음 날 출발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사실 우리 모두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 많은 눈을 뚫고 올라가기가 10에 1의 확률밖에 없어 보였어. 내가 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평평한 빙하까지 앞장섰어. 눈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끈적거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 부분을 지나는 데 약간의 지연이 있었고 3시간이 걸렸어. 그다음 S. [소머벨]가 제프 [브루스]와 오델이 전날 짐을 버린 곳까지 우리를 데려갔고, 그 후에 노튼이 선두를 맡았어. 다행히 눈 상태는 갈수록 좋아졌고, N [노튼] 혼자만 아이젠을 착용한 덕분에 발판을 깎지 않고 큰 크레바스까지 우리를 데려갈 수 있었어.

 

여기서 우리는 30분간 휴식을 취했고, 한 시 반쯤에서 나는 다시 선두에 섰고, 가파른 200피트 정도를 올라 큰 크레바스가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지점까지 갔어. 여기서부터는 두 개의 의심스러운 구간이 있었는데, N [노튼]이 첫 번째 구간을 이끌었고, 우리 둘은 크레바스의 모퉁이에서 자리를 잡았어. 그가 발견한 눈 상태는 꽤 괜찮았어. 그리고 S [소머벨]가 마지막 경사를 가로질러 이끌었어. 해저드의 흔적이 잘못된 위치에 있었지만, 눈이 그곳에서 더 잘 뭉쳐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어. N [노튼]과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를 지켜봤고, 해는 이미 우리를 떠났기 때문에 날씨도 차가워지기 시작했어. S [소머벨]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내는 데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어. 하지만 보고서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지는 않을게. 시간이 꽤 촉박했어. 우리가 캠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황혼이었어.

 

N [노튼]은 우리를 내려와 휴식을 취하게 한 것이 매우 현명했어. 체력이 부족한 상태로 산을 오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모든 팀원의 체력이 크게 떨어졌어. 이제 유일한 기회는 체력을 회복하고 더 간단하고 빠른 계획을 시도하는 것뿐이야.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 있는 사람은 제프리 브루스야. N [노튼]은 나에게 공격 조를 선택하는 책임을 맡겼고, 자신은 먼저 나를 첫 번째 조에 선택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충분히 회복될지 확신이 없어. 어바인은 아마도 한 명이 될 것이고, 나머지 두 명은 N [노튼], S [소머벨], 또는 나와 제프 중에서 4명을 두 조로 나누어 구성할 거야. 하지만 몬순이 우리에게 기회를 줄지 모르겠어. 나는 잡히고 싶지 않지만, 창 라에서 3일간의 계획은 몬순에게 좋은 기회를 줄 거야. 우리는 모레 다시 올라갈 예정이야. 이 캠프에서 정상까지 6일이야!

 

최근 며칠 동안 우편물이 몰려들었어. 연이어 세 통이나 왔어. 당신이 웨스트브룩에서 보낸 편지에는 자동차에 관한 많은 내용이 있었어. 그 차가 당신에게 많은 골칫거리를 안겨준 것 같아 걱정이야. 클레어가 보낸 시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 그리고 데이비드 [파이]가 P.Y.P. [펜-이-패스, 웨일즈]에서 보낸 좋은 편지도 받았어. 내가 이번 우편으로는 답장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당신이 대신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줬으면 해. 어머니는 엑스에서 아주 기분 좋게 지내고 계신다고 편지를 보내셨어. 당신의 편지는 특히 기뻤고, 그 외에도 좋은 편지를 써주는 사람들의 편지를 받는 것은 항상 기뻐.

 

촛불이 다 타들어가고 있어, 이제 그만 써야겠어.

 

사랑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 기원해.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때쯤에는 당신의 불안이 끝나기를, 그리고 좋은 소식이 가장 빨리 전달되기를 바래. 50대 1의 확률이지만, 우리는 아직 도전할 것이고, 자랑스러운 결과를 내도록 노력할 거야.

 

당신에게 큰 사랑을 보냅니다. 언제나 당신의 사랑하는, 조지.

 

[첫 페이지 여백에 적힌 글]

P.S. 내가 자랑스레 쓴 부분은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야.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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